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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의 사조, 생애, 작품

by 꼬 물 2023. 9. 3.
라파엘로


목차

1. 라파엘로 산치오 및 그의 사조
2. 라파엘로 산치오의 생애
3. 라파엘로 산치오의 작품 및 평가
 

1. 라파엘로 산치오 및 그의 사조

라파엘로의 본명은 라파엘로 산치오 다 우르비노(Raffaello Sanzio da Urbino)로, 이탈리아의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건축가 중 한 명이라 불리며,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3대 거장이라 불린다. 그는 화가인 동시에 건축가였는데, 그의 작품들은 구도가 완벽에 가깝고 화풍이 우아하고 기품이 있으며 유연하여 르네상스 및 서양 미술에서 그의 기여도는 굉장히 높다고 평가된다. 게다가 그는 당대 꽤 잘생겼다고 인정받던 미남으로서, 여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고 전해진다. 또, 비교적 성실했으며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는 성격의 소유자라 여성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이 때문인지 다양한 의뢰 작업들도 많이 받아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의 절정기에 활동을 하며 르네상스를 이끌었으며, 그의 죽음이 르네상스의 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라파엘로의 후대인 바로크 시대에 많은 영감과 영향을 주었다.
 

2. 라파엘로 산치오의 생애

라파엘로는 1483년 4월 6일 우르비노 공국의 우르비노에서 궁정화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때문에 본명에 '우르비노'가 들어간다.) 그의 아버지는 당대 높이 평가되는 화가는 아니었으나 궁정화가로서 궁정과 관련된 미술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10대 초반 무렵 그는 당대 유명 화가였던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밑에서 도제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즉 페루지노의 아래에서 조수일을 하며 그림을 본격적으로 연습하고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일찍이 그의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그의 스승인 페루지노 덕분에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였다. 라파엘로는 페루지노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그것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색깔을 입혀 표현하였다. 이후 20대 초반 무렵에는 스승으로부터 독립하여 1504년경 피렌체로 향한다.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에 영감을 받음과 동시에 그 이전 시대의 다양한 양식들도 연구하며 자신만의 표현 방법을 만들어 내었다. 1508년경 교황의 부름에 따라 로마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로마에서 그의 영향은 날이 갈수록 커지게 되었다. 겸손하고 성실하며 신중했지만 걸작들을 만들어 내었고, 이에 다양한 이들의 신뢰를 얻으며 중요한 의뢰작업들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전해진다. 의뢰작을 만들면서도 그는 자신의 다양한 시도를 시행하였고, 고대 유물에도 관심을 가져 이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로마의 유물을 관리하는 책임자로서 임명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다양한 건축물 및 유물들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건축물 및 작품들을 만들어내던 그는, 37번째 생일인 1520년 4월 6일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게 된다. 이후 그는 로마의 판테온에 묻혔다.
 

3. 라파엘로 산치오의 작품 및 평가

라파엘로의 작품들 더보기

라파엘로 산치오

라파엘로 산치오 다 우르비노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예술가·화가이며, 흔히 라파엘로라고 불린다. 《아테네 학당》이 특히 유명하다. <아테네 학당>은 에피쿠로스, 피타고라스, 안티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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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37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라파엘로지만 그의 호감을 사는 성품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실력으로 그는 많은 의뢰를 받고 많은 지지를 받으며 짧은 기간에도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또한 과거의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며, 겸손한 자세로 배울만 한 것들을 찾고 연구하였으나 그대로 베끼거나 머무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많은 시도를 하고 다양한 것을 생산해내려고 하던 자세는 미술사에 크게 공헌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