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1. 미켈란젤로에 대한 사조 및 개요
2. 미켈란젤로의 생애
3. 미켈란젤로의 작품 및 평가
1. 미켈란젤로에 대한 사조 및 개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디 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로, 피렌체 공화국의 화가이자 조각가이자 건축가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화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와 함께 르네상스를 이끈 3대 거장으로 불린다. 그는 살아생전에도 그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현대에도 예술가로서 명성을 떨치며 존경받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들 중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남아있다. 미켈란젤로는 다양한 회화 작품 및 건축품을 남겼으나, 그보다 그가 가장 연구하고 노력하고 몰두했던 것은 대리석 조각 작품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회화에 대해서는 조각보다 가치가 낮다고 생각했으며, 이 때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서로 회화가 낫니 조각이 낫니 하며 싸운 적이 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2. 미켈란젤로의 생애
미켈란젤로는 1475년 3월 6일 몇 대째 은행업무를 하던 집안에서 마을 행정관인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6살 때 병으로 목숨을 잃게 되고, 이에 미켈란젤로는 유모에게 자라게 되었는데, 그 유모의 남편이 석수장이였다고 한다. 이때의 경험이 미켈란젤로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미켈란젤로가 예술가로 크는 것을 반대했는데, 당시 예술가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미켈란젤로를 말렸지만 결국 미켈란젤로는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13세경 도제생활을 하러 당시 유명 화가인 기를란다요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약 1년 만에 그의 밑에서 나오게 되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메디치가문에 의해 메디치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미켈란젤로는 여러 조각들을 만들며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다양한 후원을 받았다. 그러나 메디치가가 몰락하고 혼란을 겪는 시기가 되자 그는 그곳을 떠나 볼로냐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러 작업을 하던 그는 '피에타'를 만들게 되는데, 이 피에타로 그는 높은 평가를 받게 되며 명성을 떨치게 된다. 이 피에타에는 유일하게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이후 이 피에타로 인해 다비드의 의뢰를 받게 되고, 이 역시 걸작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여러 작품들이 주목받기 시작하자 그에게는 큰 의뢰가 많이 들어오게 되는데, 그는 회화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기 때문에 조각에 비해서 선호도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교황의 의뢰를 다양히 받으며 천장화 및 벽화를 다양히 그리기도 하였고, 경제적으로 부를 이루기도 하였다. (물론, 밀린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와중에 아버지나 형제들이 돈을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힘들어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후 건축가로서도 일을 하였는데, 본격적으로 건축일을 배운 것은 아니었으나 비례와 균형을 잘 살려 건축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디치가의 교회나, 산로렌초 교회의 부속 도서관, 성 베드로 대성당 등의 다양한 설계를 맡아하였다. 이렇게 그의 말년에는 조각보다 육체적 체력이 덜 필요한 회화나 시, 건축 등에 참여하였으며, 르네상스의 3대 거장 중 가장 오랫동안 생존하여 르네상스 말기인 그의 나이 88세까지 활동하였다. 이후 1564년 2월 18일 향년 88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로마에 묻혔다가 피렌체로 옮겨졌다.
3. 미켈란젤로의 작품 및 평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예술작품
미켈란젤로 디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는 이탈리아의 조각가, 화가, 건축가, 시인이다. 르네상스 시기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피렌체, 로마 등 이탈리아 여러 지역에 거주하면서 수많은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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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마찬가지로 불법적인 방법으로 몰래 시체 해부를 하며 인간의 근육과 몸의 모습들을 연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인지 그의 작품들은 인체 묘사 솜씨가 굉장히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흉내내기도 쉽지 않을 정도인 데다, 후에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의 시점에 따라 비율이 맞도록 설계했다고 여겨지기도 하니, 그의 작품들은 아주 높이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의 명성에 비해 후대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그의 작품을 쉽게 따라 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회화, 조각, 건축에 걸친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규모가 크기에 직접 본다면 더욱 장엄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는 다른 것들에 힘을 쏟기보다 작품 활동에 가장 집중하며 죽기 전까지 활동했기에 그의 열정은 누구도 함부로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과 노력이 바탕이 된 그의 작품들의 가치는 높이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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