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1. 파블로 피카소 및 그의 화풍
2. 파블로 피카소의 생애와 업적
3.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및 평가
1. 파블로 피카소 및 그의 화풍
파블로 피카소는 스페인의 화가이다. 파블로 피카소의 풀네임은 아주 긴데, 바로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 로스 레메디오스 시프리아노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루이스 이 피카소 (Pablo Diego José Francisco de Paula Juan Nepomuceno María de los Remedios Cipriano de la Santísima Trinidad Ruiz y Picasso) '이다. 이는 부모님의 성을 붙여서 이름을 만들던 문화에서 온 것으로, 조상들의 성을 붙이기만 하고 줄이지 않아 점점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조상을 제외하고 부모의 이름만으로 본다면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Pablo Ruiz Picasso)'로서, 루이스가 아버지의 성씨이고, 피카소가 어머니의 성씨이다. 입체파(큐비즘)를 창시한 인물로서, 입체주의 및 콜라주를 발전시켰다. 또한, 초현실주의자들과 긴밀하게 왕래하면서 초현실주의를 작품에 녹여내기도 하였다.
2. 파블로 피카소의 생애와 평가
파블로 피카소는 1881년 10월 25일 아버지 호세 루이스 블라스코와 어머니 마리아 피카소 로페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피카소가 태어날 무렵 그의 아버지는 식당 장식 그림을 그리는 화가지망생이었는데, 아버지의 영향으로 피카소도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던 피카소를 보며 재능을 일찍이 알아차린 그의 아버지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어 달라는 뜻을 내비치며 야망을 아들에게 쏟아부었다. 피카소가 10살 무렵 그렸던 소묘는 이미 완성에 가까울 정도였기에, 아버지는 피카소가 13살 되던 해에 개인전을 열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고,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이후 마드리드의 산페르난도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한 피카소였지만, 그는 명문학교에서의 수업방식을 따분해하고 지루해했으며, 주변을 돌아다니며 풍경 등을 그리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고 여겼다. 이에 아버지와 충돌이 일어나 결국 서로를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피카소는 미술학교의 교육을 받지 않기로 하고, 서명을 할 때에도 아버지의 성을 빼버렸다. 이후 파리에서 여행을 한 그는 색채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었는데, 그동안 스페인에서만 보던 어두운 색채와 달리 선명하고 화려하며 강렬한 색채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시련이 닥쳤는데,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자살 등 힘든 일이 겹치게 되자 그의 작품에는 청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고, 이를 '청색시기'라고 부른다. 이후 파리로 이주를 결심한 피카소는 색채의 변화를 계속 시도하고 연구하였다. 이 시기를 '장미색 시기'라고 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평면에서 입체적인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했고, 1907년경 '아비뇽의 처녀들'을 완성해 낸다. 이후 계속해서 입체파를 발전시키고 원근법과 입체의 공간을 깨부수며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따라서 평면에서도 다양한 시점을 나타내고자 하여 대상을 분해하고 재조립하였다. 그러나 대상을 분해한다고 해서 추상적 기법을 사용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추상의 요소를 나타내면서도 대상이 남아있도록 한 것이었다. 이러한 피카소의 시도들을 보며 주변의 시선은 그리 좋지 않았으나,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를 원했다. 또한 입체주의에서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콜라주 등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이후 초현실주의 등에도 관심을 가져 초현실주의적 주제들을 많이 선택하였다. 또한, 그는 여성을 굉장히 좋아하고 마초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여성들과도 연인관계를 유지한 바가 있다. 이에 이러한 여성들을 그리거나, 여성들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들도 많다. 또한 스페인내전과 관련된 게르니카, 한국전쟁과 관련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들도 그려내기도 하였다. 이후 계속해서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새로운 시도를 하던 그는 1973년 4월 8일, 프랑스 무쟁에서 향년 91세로 사망한다.
3.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및 평가
파블로 피카소는 혁명적인 작품 시도를 계속했다는 것에대한 평가가 높다. 일찍이 회화의 기본기를 모두 이해하고 익힌 후 다양한 시도와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내어 입체주의를 창시하였고, 한 화풍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며 말년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내었다. 보통 화가들은 생전에는 가난한 삶을 살다가 사후 작품의 값이 비싸지는 경우가 많으나 피카소는 그의 생전에도 비싼 값에 그림을 팔 수 있었는데,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한몫을 한 것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새롭고 다양한 시도들은 20세기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파블로 피카소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는 스페인 말라가에서 출생하였고 주로 프랑스에서 미술활동을 한 20세기의 대표적 큐비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대표작으로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등
www.google.com
'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르크 샤갈(Moishe Shagal, Marc Chagall)의 생애, 작품, 평가 (0) | 2023.10.24 |
---|---|
조선 3대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 업적, 화풍, 생애, 작품 및 평가 (0) | 2023.09.17 |
단원 김홍도 풍속화, 수묵화, 산수화/ 씨름, 서당 등 김홍도의 작품과 생애 /조선 4대화가 (0) | 2023.09.11 |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의 사조, 생애, 작품, 평가 (0) | 2023.09.09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의 사조, 생애, 작품 및 평가 (0) | 2023.09.06 |